2007년 08월 31일
좌절금지...
어제 모 은행 프로젝트에 참여인력 인적사항을 제출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오랜만에 경력사항을 다시 적어봤다. 어느새 10년도 넘고 12년 가까이 IT 바닥에서 밥을 먹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그만큼 은퇴가 가까운 것인지도...
모 은행 관계자 분이 거대한 꿈 - 모비딕이라고 잡으려는 건지 - 을 꾸었는지 금번 컨설팅 단계에서 은행 인터넷 뱅킹 전반에 사용할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자 한단다. 그냥 프레임워크 하나 만드는 거면 별일도 아니지만 스트럿츠, 스프링, iBatis 에다가 은행 전산실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다양한 컴포넌트들 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아키텍쳐를 설계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전체 컨설팅 업무에서 한 줄기에 해당한다고 해서 투입 인력은 고작 한명내지 두명. 프레임워크를 설계해 주기만 한다면 그나마 낫지 온갖 시스템 개발 프로세스에 대한 표준을 정의하고 문서화 하는데다 교육하고 프로토타입 구현해야 한단다. 원래 이 정도 규모라면 컨설턴트 4~5명은 투입되어야 하거늘...
물론 아키텍쳐 설계 경험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스트럿츠나 스프링은 건드려 보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10년 동안 자바를 해왔지만 내내 직접 프레임워크를 설계해서 써왔기 때문이다. 고객은 하늘이고 스펙은 이미 정해진 것, 그리고 내가 맡기로 한 일이니 부랴부랴 책을 사서 스트럿츠랑 스프링을 공부하는 중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아니면 쌓은 내공 덕인지 프레임워크 책을 읽는데 별 어려움도 없고, 이해하는데 큰 무리도 없었다.
그러나 과연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인가? 회사로서도 크나큰 도전이다. 다양한 비즈니스를 해왔지만 은행권 프로젝트라는 것은 성공과 실패의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왜 꼭 IT 현장을 떠나려고 하면 기회가 찾아오는 걸까? 떠나야 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산다. 오래도록 개발을 해오고 온갖 프로젝트를 해왔지만 즐거운 나날보다는 힘든 날들이 많았다.
10년 내내 온갖 미디어와 에반젤리스트들을 통해 들어온 생산성 향상의 꿈은 그들의 공허한 약속이거나 부도난 수표라고 여겨왔다. 처음 객체지향 기술이 나올 무렵 당시 신기술을 알리기 위해 책을 써내고 전세계를 향해 홍보하던 고수들과 학자들은 객체지향 기술로 인해 소프트웨어 분야가 드디어 가내수공업 단계에서 공장자동화 단계로 넘어가리라고 확언했다. 또 하드웨어 산업처럼 엄청난 부가가치와 빠른 발전으로 인류의 생활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2000년이 지나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고, 여전히 소프트웨어는 고달프고 배고픈 산업일 뿐이다. 물론 극소수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세계적인 갑부가 되고,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겹다, 한계를 느낀다라고 해야할까? 도저히 생산성이 늘어나지 않는 이유가 무얼까? 반복적인 코드를 생산하는 과정을 벗어날 방법은 없나? 프로그램을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없을까? 프로그램의 실행과정을 자동으로 모니터링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상상을 하지만 실제로 그런 기술을 만들 능력이 없는지 시도도 해봤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은행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AOP 기술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제니퍼와 같은 실시간 모니터링 툴들을 써보고 내부 아키텍쳐들을 분석하면서 세상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고 또한 꿈꾸던 기술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10년을 더 버틴다면 지난 10년 간 기다려오던 기술들이 일상화되고, 소프트웨어 분야가 하드웨어 분야처럼 높은 생산성을 지니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거라는 기대감을 느낀다.
언제나 신기술에 대한 예측들은 빗나가고 사람들이 기대한 시점에서는 여전히 불만족스럽기 마련이다. 아직 로봇은 겨우 걸음마를 하고 있고 자동차는 하늘을 날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영화에서 보던 기술들 중에 일부는 하나씩 현실화 되고 있다. 느리지만 기술은 결코 퇴보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기대보다 아주 천천히 자라갈 뿐이고 사람들의 열망에 상관없이 제 갈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인내는 쓰다. 하지만 그 열매는 달다. 승자가 살아남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달리보면 살아남은 자가 승자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 by | 2007/08/31 16:13 | Development | 트랙백 | 덧글(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