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열정에 사로잡혀 열심히 애쓴다고 다 되는게 아니다.

어느 중견 기업에 새로운 팀장이 부임했습니다.
그동안 정체 일로에 있던 팀을 맡게 되어 부흥시키라는 과제를 떠 맡고 몇 주에 걸쳐
현황 파악을 하고 나름 개선할 점들을 찾아서 사장에게 보고를 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알리고 사내 여러 사람들의 지원을 받고자
'중장기 발전 계획'이라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과연 이 분은 잘 하고 있는 걸까요? 정말 잘 될까요?

일단, 의욕을 가지고 새로운 계획을 마련하고, 현재의 문제를 파악했으며
일목요연하게 문제점과 개선할 점들을 정리한 후에 공개적으로 의지를 천명한 것은
대단히 잘한 것으로 비추어질 겁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어쩌면 정말 절반의 성공을 이미 확보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정말 이게 잘하는 걸까요?

정말 진심으로 노력하는 분들에게 찬물을 끼얻는 소리가 될지 모르지만,
제 오랜 경험을 담아 - 저 자신도 정열적으로 일하던 시절이 있으니까요 -
이러한 행동의 몇 가지 문제점들을 얘기해볼까 합니다.

첫번째, 지나치게 독선적이다.
어떤 조직이건 그 조직에 이미 몸담고 있는 사람들만큼 현재의 문제점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문제를 알고 있는데 해결되지 못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혹은 그들에게 그것을 고칠 의지가 없다는 것이겠지요.
어느 쪽 이건 간에 기존의 조직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기존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느라, 이미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게 될 수 있는 겁니다.
토론이나 합의를 거치지 않고 그저 타인의 독단적 시선으로 조직을 판단하는 것은 무모한 행동입니다.
자신을 타인이라 스스로 규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따라서 조직의 일원이 되지 못하며,
조직원들의 반발을 불러오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개혁을 이룰 수 없습니다.

두번째, 기존의 개선 노력을 무시하거나 폄훼할 수 있다.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은 대게 자신이 그 동안 꿈꾸어 온 이상론을 이야기 합니다.
기존 조직은 그런 이상을 향한 노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그러니 자신이 나서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는 조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노력하지 않고 개선하지 않는 조직은 아예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쌓아올린 실적들과 노력들이 이미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해야할 일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성과들을 부정하게 마련입니다.

zero-base에서 새롭게 쌓아올린다는 구상은 멋있어 보일런지 모르지만,
결코 현명하지도 수월하지도 않습니다.

세번째,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혼동한다.
유연한 근무 시간, 인재의 적재적소 투입, 팀 간의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협조.
이런 구호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나아가, 우수 인재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까지도....
그러나, 이런 당근을 중간 관리자가 제시할 수 있을까요?
발전계획을 CEO에게 보고하고 승인 받았다고 해서, 이런 제도가 바로 실행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제가 '개혁'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꼴통보수'라고 비추어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미 조직에서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북돋아주고 그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리더로서 아랫사람을 오히려 섬기려고 하면 더욱 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장서서 멋진 구호를 외치고, 희망을 노래하고,
이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주겠고라고 강변하는 그런 리더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리더는 모름지기 아무런 기득권도 없고
아무런 미래도 희망할 수 없는 이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역할을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방식이 틀렸어! 그러니 내 방식을 따라야 해...
당신들은 머저리고 바보인데다 지금까지 해놓은 게 없어.
그러니까, 제대로 해보자고....'

이런 말을 하는 리더를 만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존심이 짓밟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이러다가 망한 리더 많이 만나봤습니다. 저 자신도 경험해 봤구요.

그리고, 이 사례는 중간 관리자들에 해당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최상위 리더는 역시 '이밥에 고깃국' 정도되는 휘황찬란한 구호를 외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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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 2008/02/04 22:02 | History | 트랙백(2) | 핑백(3) | 덧글(13)

Tracked from Younghoe.Info at 2008/02/05 01:43

제목 : 인정하는 것이 개선의 시작?
써니님 블로그에는 S급(?) 글이 자주 올라오는군요. 펌질은 자제하려고 해도 마치 내 이야기인양 와닿는 글을 지나쳐버릴 수가 없네요. 그래서 일부 구절을 스크랩합니다. 그런데 기존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느라, 이미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게 될 수 있는 겁니다. 토론이나 합의를 거치지 않고 그저 타인의 독단적 시선으로 조직을 판단하는 것은 무모한 행동입니다. 자신을 타인이라 스스로 규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따라서 조직의 일원......more

Tracked from khris'log at 2008/02/05 13:38

제목 : 게임 기획이라는 이름의 잡탕
회사에서 열심히 땡땡이치며 HanRSS 새 글을 보던 중, 써니님의 포스팅이 눈에 들어와서 읽어보았다. 써니님은 조직의 리더에 대해 얘기하셨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게임 디자인 -보통 기획이라고 잘못 쓰이는- 에도 같은 문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게임 디자이너가 사람을 다루는 직업은 아니나, 열정만 가득한 누군가들이 주어진 뭔가를 망쳐놓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게임 디자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게임 업계의 게임 디자인 수준은 바닥......more

Linked at iamtopaz님의 글 - [.. at 2008/02/05 10:01

... y by 토파즈 질문하고 경청해서 실천한다 돌아보는 공감받은 공감하는 친구들은 ← 2008년 2월 1 5 5 Feb 2008 0 metoo 리더로서 아랫사람을 오히려 섬기려고 하면 더욱 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전 10시 1분 댓글 (0) « 2008년 02월 01일, 금요일   Today 10 / Total 6763 Profile ia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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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y by 일이 일이의 주절주절 D-25 돌아보는 공감받은 공감하는 친구들은 ← 2008년 2월 1 2 4 5 5 Feb 2008 0 metoo 리더가 열정에 사로잡혀 열심히 애쓴다고 다 되는게 아니다. 오후 5시 0분 써니의 一生牛步行 blog 댓글 (0) 2 metoo 늘 서있으면 운동 되지 않나요 오전 10시 19분 소프트웨어이야기 blog ... more

Commented by 소마 at 2008/02/04 22:41
아.. 진짜 공감합니다. 첫번째에서 세번째까지 전부 다요. 첫번째는 고등학생 시절 7~80% 정도 경험했구요. 트랙백으로 날려 보고 제 생각도 정리하고 싶군요! ^^
Commented by 정시퇴근 at 2008/02/05 01:36
저도 회사의 답답함을 많이 느끼고 있고, 이런 방법으로 개혁(?)을 생각했었습니다만, 전략,전술적인 면을 많이 수정을 해야겠군요. 솔직히 뭘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리더들, 경영에 관한 책들은 혁신과 자기 개발 발전을 노래하지만, 항상 현실은 안전빵이 우선입니다. 실패하는걸 알면서도 나에겐 피해가 없는(손해는 회사가 보는)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정책들이 결정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아직 제가 회사생활을 많이 안 해봐서 일까요? 그게 옳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회사는 그렇게 흘러 흘러가는 것일까요? 그래서 우리 회사도 그저 그런 회사에서 망해버리진 않을까 걱정입니다.

또 열정을 가지고 일을 했던 사람들도 그냥 그렇게 되는대로 굴러가는 회사시스템을 볼 때 마다 기운이 빠져서, 그 열정들이 조금씩 없어져 갑니다. 만성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답답하고 기운이 빠지는데, ‘나도 몇 년 뒤엔 저렇게 되지 않을까?’ 지금도 회사 짬밥을 좀 먹었다고 그런 안이한 생각이 조금 드는 자신을 보면 참 웃깁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영회 at 2008/02/05 01:43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ommented by 이선주 at 2008/02/05 17:14
전 27살의 작은 회사 사원입니다. 회사에서 뭔가 해보자고 하고, 저도 뭔가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뜨듯미지근합니다. 다들 돈 많이 받는 다른 곳 혹은. 뭔가 공부는 하는데... 잘 공유도 안 하는 거 같고.

저만 왕따인지, 아니면, 저만 의욕과잉이라 되지도 않을 일을 해야된다고 생각하는건지. 사원이 이런 말 하는게 원래 튀는건지.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뭘 하고 싶다고 그걸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것도 오만한 거 같아서. 있지만... 변화는 사장님만 만드는 걸까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토비 at 2008/02/05 17:29
첫문단에 나오는 설명에 비해서 뒤따르는 비판은 매우 극단적이군요.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안을 공개하고 이끌어가려는 태도가 꼭 기존 조직을 무시하고 나만 잘났다는 식의 극단적인 태도로 갈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또 그런 개혁을 주도할 리더를 애타게 기다리는 팀과 조직들도 많습니다. 기존 인물이 하기에는 힘든 개혁은 새로 부임한 사람이 주도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고 성공가능성이 높을 것이고요. 적어도 제 경험으로는 그렇더군요. 앞뒤 분별 못하고 개념없이 설치는 리더는 물론 아니겠지만요.
Commented by 써니 at 2008/02/05 17:49
토비님...
의견 감사합니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무척 흥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매우 극단적인 표현을 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다 보니 아무래도 거친 표현을 여과없이 담게 된 것이지요.
Commented by 동규 at 2008/02/05 18:45
혁신은 위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 조직의 생리에 맞겠지요.
추진 방식은 써니님의 글처럼 사람에 대한 고찰없이 프로세스로만 해결하려고하면
반발에 부딪히고, 소위 배가 산으로 가는 사태가 발생하겠지요.

조직원을 최대한 혁신 프로젝트에 끌어들여 같이 발을 담구게 해야 비로소 같이 움직이겠지요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산티아고 at 2008/02/05 19:15
좋은 글 감사합니다. 뒤돌아보게 하는글이군요. 이 글을 읽고 돌이켜보니 열의에 앞서 독선적이었던 적이 분명히 제게도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틀렸다'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시작했던 듯 보이네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
Commented by Tuna at 2008/02/05 22:38
써니님의 지적은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Commented by 유안 at 2008/02/06 02:14
이 포스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지 몰라도.

원래
최고의 리더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
그 다음은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
그 다음은 무식하고 게으른 사람,
최악의 리더는 무식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지요(...)
Commented by ologist at 2008/02/11 20:56
기존 있던 사람들의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워주고 좀더 가치있는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향으로 보입니다. 독선자체는 누구에게도 득이 될수 없죠.
Commented at 2008/02/12 10: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코키토스 at 2008/02/13 16:56
최상위 리더는 역시 '이밥에 고깃국'...
이 대목에서 한참 웃었습니다. 예전 회사의 사장님이 생각 나서요... ^^
써니님의 글은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군요.
항상 느끼고 공감하고 갑니다.

근뎅... 공감하공 혼자 결론을 못낸다는 문제가... 으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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