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럴까?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는 건 왜 그럴까?

사장의 강력한 요구로 루키(rookie)들에게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게끔 숙제를 던져주었다.
책임자가 발표해봐야 개인 의견이나 지나치게 편향된 보고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는 명분이다.

하여튼 나는 면제 받았다고 즐거워하며 기꺼이 숙제를 맡겼는데,
태어나서 한번도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본 적이 없으니 쉬운 일이겠는가?
일단, 한 명을 붙들고 며칠동안 다듬고 다듬어서 제출 했는데
당장 영업 자료로 쓰겠다는 호평과 사장의 치하가 돌아온다.

제목도 'Web 2.0 트렌드를 지향하는 UI 개발'이라고 붙여줬으니 떡밥도 좋고,
내용도 최근 연구개발 성과를 잘 요약해서 상품 가치도 있다.

문제는 사원이 한 명이 아니라는 것. 다른 직원들이 불만이 생기지 않게끔 프레젠테이션 주제를 던져 주었다.
'Struts2와 Spring2'라는 최신 오픈 소스 기술이 대규모 기업 환경에서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 정리해 보라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논문 쓰려는 듯 목차를 적어 왔다.
참고 자료(컨설팅 설계 문서)를 검토해서 용어 정의, 기능 나열, 기대 효과 등등을 포함 시키겠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일하고 생활하는 곳이 '대학원'이나 '연구소'가 아니라는 거다.
무언가를 서술하고 정리한 후 가치를 평가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지니스의 목적은 현재 상황에 존재하는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가장 비용이나,
투입 자원 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있는 것이다.

'Spring2'가 좋다, 'Struts2'가 최신 기술이니까 써야 한다는 식으로 서술해봐야
프레젠테이션을 접하는 사람이 그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막에 가서 난로를 팔겠다면, 대체 사막에 난로가 왜 필요한지 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난로의 열효율이 좋고, 기름을 적게 먹는다는 점이 중요한게 아니다.
사막은 의외로 밤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밤마다 추위에 시달리는 상황을 겪게 된다는 점이 핵심인거다.

우선 기존에 우리가 일해온 방식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왜 기존의 방식을 버려야 하는지, 개선할 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처음 대학교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우던 시절 답답했던 점.
회사에 취업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다가 어느 날 반복적인 업무에 회의를 느낄 때.
문제가 발생하면 똑같이 반복되는 코드들을 무수히 고쳐가면서 해결해야 했던 무의미한 작업들.
그런 문제들이 새로운 솔루션을 도입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되집어 볼 것을 요구했다.

문제를 파악하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답을 찾아갈 수 있다.
여기저기 쌓여 있던 온갖 문제들이 새로운 솔루션을 도입하면서 어떻게 나아졌는가,
원인과 해결책, 그리고 얻게된 성과를 나열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증거이며, 프레젠테이션이 되는 것이다.
(궁극적인 표현인 생산성 향상이라는 결론을 아주 명확하게 도출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의 목적은 청중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 내는 것 말이다.
논리적인 설득은 프레젠테이션의 다양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설득을 하고 싶은가?
우리는 지나치게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교과서에 매몰된 교육을 받아 왔기에,
질문이라는 것은 지겨운 시험에 나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질문의 필요성을 애써 잊고 산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질문을 해야만 한다.
질문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후배들에게는 우스개 소리로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약장사는 '혹시 어디 안 좋은데 없냐, 밤에 잠은 편히 자느냐'고 물으면서 약을 판다.
정치인은 '지금 잠이 오냐,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표를 구걸한다.
사장들은 '회사 사정이 어떤지 아느냐, 네 월급은 어디서 나오는지 아느냐' 물으면서 일을 시킨다.

우리는 누구나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 타인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에 비로소 문제를 인식하며,
또한 타인이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했을 때 별 의문 없이 타인의 주장을 따르면서 산다.

이런 이치를 두가지 관점에서 활용할 수 있다.

첫째, 남들을 설득하고 싶으면 상대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문제(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 즉시 답을 제시한다. 상대가 중대한 문제라고 인식할수록 빠르고 쉽게 설득할 수 있고, 내 답을 수용할 것이다.

둘째, 타인이 나의 중요한 문제를 얘기하고 바로 답을 제시할 경우에는 매우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자고로 사기꾼들이나 부정한 의도를 가진 사람일수록 아주 명쾌하고 그럴싸한 답을 제시한다.

by 써니 | 2008/01/23 17:25 | History | 트랙백(1) | 덧글(2)

Tracked from Younghoe.Info at 2008/01/24 12:57

제목 : 설득의 정석: '써니의 一生牛步行'에서
왜 그럴까?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는 건 왜 그럴까? 본 내용의 위 포스트에 대한 독후감입니다. 우선 기존에 우리가 일해온 방식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왜 기존의 방식을 버려야 하는지, 개선할 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른바 '공자님 말씀'이지만 맥락을 공유하며 읽게 되니 여간 와닿는게 아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구절에서 일어버린 열정에 대한 기억이 살아났다. 회사에 취업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다가 어느 날......more

Commented by 미친과학자 at 2008/01/23 18:11
"문제를 파악하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답을 찾아갈 수 있다."
-> 진정 심오한 진리로군요.
Commented by 영회 at 2008/01/24 12:37
적절한 시점에 올라온 글이라 더욱 공감하며 있었습니다.
영감을 주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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