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12일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가능성이 곧 능력이라는 논리는 성립하는가? 하늘에서 돈이 떨어질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럴 가능성이 아주 낮다면 무시할만한 것이 된다. 즉, 거의 zero에 가까운 수(어려운 말로 zero에 수렴하는 값)은 그냥 zero(0)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다.
살아오면 무수한 갈등을 겪어 왔지만 가장 오래되고 그치지 않는 갈등이 바로 '가능성'에 대한 문제다. 부모, 친구, 직장상사, 스승 심지어 거의 관계없는 타인까지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들이대며 그들의 요구이거나 혹은 희망, 부당한 의무, 강요된 책임감을 주입하려 든다. 해보면 어떻겠는가의 제의 수준을 넘어 왜 못하는가? 시도하려 하지 않는 것도 죄는 아닌가? 하는 우회적인 비난을 전가할 때가 많다.
여기서 문제는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런 책임(의지)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요구(책임)을 수용할 능력이나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감안하지 않는다. 즉, 자신의 욕망을 상대에게 무조건적으로 투영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바위에 금칠을 한다고 해서 그게 금덩이가 되는게 아니다.
둘째, 강요를 당하는 대상에게 능력이 존재한다고 한들 그에게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우리가 밥을 먹는 이유는 배가 고프기 때문이고, 돈을 버는 것은 돈이 주는 안락함 때문이다. 사자는 배가 고프지 않으면 사냥하지 않는다. 사자에게 사냥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의욕을 느끼지 못한다면 능력이 있어도 도달하지 못하고 만다.
첫번째 문제의 원인은 설득을 하려는 사람이 비이성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이고, 두번째 문제의 원인은 설득 대상에 대한 감정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타인을 통해 실현하고자 사람은 이성적이며, 동시에 감성적이어야 한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 너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을 지나치게 계산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고, 너무 열정적이어서 실패하는 사람은 상대의 능력을 측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살아오면 무수한 갈등을 겪어 왔지만 가장 오래되고 그치지 않는 갈등이 바로 '가능성'에 대한 문제다. 부모, 친구, 직장상사, 스승 심지어 거의 관계없는 타인까지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들이대며 그들의 요구이거나 혹은 희망, 부당한 의무, 강요된 책임감을 주입하려 든다. 해보면 어떻겠는가의 제의 수준을 넘어 왜 못하는가? 시도하려 하지 않는 것도 죄는 아닌가? 하는 우회적인 비난을 전가할 때가 많다.
여기서 문제는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런 책임(의지)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요구(책임)을 수용할 능력이나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감안하지 않는다. 즉, 자신의 욕망을 상대에게 무조건적으로 투영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바위에 금칠을 한다고 해서 그게 금덩이가 되는게 아니다.
둘째, 강요를 당하는 대상에게 능력이 존재한다고 한들 그에게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우리가 밥을 먹는 이유는 배가 고프기 때문이고, 돈을 버는 것은 돈이 주는 안락함 때문이다. 사자는 배가 고프지 않으면 사냥하지 않는다. 사자에게 사냥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의욕을 느끼지 못한다면 능력이 있어도 도달하지 못하고 만다.
첫번째 문제의 원인은 설득을 하려는 사람이 비이성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이고, 두번째 문제의 원인은 설득 대상에 대한 감정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타인을 통해 실현하고자 사람은 이성적이며, 동시에 감성적이어야 한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 너무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을 지나치게 계산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고, 너무 열정적이어서 실패하는 사람은 상대의 능력을 측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by | 2007/09/12 13:12 | Plan for 40 | 트랙백 | 덧글(3)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